국제 타이포그래픽 스타일의 선구자, 요제프 뮐러-브록만(Josef Muller Brockman)
요제프 뮐러-브록만, 그는 누구인가?
요제프 뮐러-브록만(Josef Müler-Brockmann, 1914. 5. 9. ~ 1996. 8. 30.)은 스위스의 그래픽 디자이너, 작가, 교육자로, 뮐러-브록만 & Co. 디자인 회사의 교장이었습니다. 그는 아마 가장 유명한 스위스 디자이너일 것입니다.
뮐러-브록만은 스위스의 취리히 근교 도시 라파스 윌 건축기사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는 중학교를 졸업한 후 취리히에서 화가인 발터 디겔만의 조수로 일하며 같이 수습생으로 있던 사진작가 에밀 슐테스에게 그래픽과 타이포그래픽에 대한 개념을 배우게 됩니다.
조수로 일하는것을 그만두고, 활자체에 강하게 의존하는 "스위스 스타일(Swiss Style)"을 가진 스위스의 두 디자인 학교에서 학습하게 됩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전에,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의 대가 에른스트 켈러(Ernst Keller)와 알프레도 빌리만(Alfred Willimann)이 교수로 있는 취리히 미술공예학교입니다. 당시 이 두 사람은 스위스 디자인계에 막강한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고 합니다. 에른스트 켈러는 바우하우스의 모더니스트 원칙과 얀 치 홀드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를 가르쳐줬다고 하는데, 뮐러-브록만은 이 두 스승으로부터 디자이너로서의 기본적인 태도와 '자신 작품에 대한 비판하는 정신'에 대해 배워 이 부분이 디자이너로 살아가는 데 핵심적인 가치관으로 삼을 정도로 중요했다고 합니다.
모더니즘을 향하여... 국제 타이포그래피 스타일 운동을 불러일으키다.
그 이후 그는 Walter Diggelman과 함께 디자인과 광고에서 수습생을 했습니다. 1936년에 독립하여 취리히에 그래픽 디자인, 전시 디자인, 그리고 사진을 전문으로 하는 디자인 스튜디오를 차렸습니다. 활발한 활동으로 인해 스위스 공작 연맹의 최연소 회원이 되었고, 새로 결성된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 협회에 가입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그는 모더니즘과는 다소 거리가 있는 일러스트 기반의 주관적 작업을 하는 스타일이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자 뮐러-브로크만은 장교로 복무하게 되고, 전쟁이 끝나고서야 다시 디자이너로서의 활동에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1948년 프라하 국제 박람회에서 스위스 디자인을 담당하게 되었는데, 그곳에서 만난 아방가르드 아티스트에게 모더니즘적 태도를 배우게 되고, 건설주의, 데 스틸, 슈프리머티즘, 바우하우스를 포함한 여러 다른 디자인 및 예술 운동의 아이디어에 영향을 받게 됩니다. 이로 인해 모호이너지, 리시츠키 등.. 여러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업물을 마주하게 되며 스스로의 작업물을 객관적으로 분석합니다.
30대가 된 그는 주관적인 일러스트레이션의 느낌을 탈피해 구조적인 타이포그래피를 다루는 스타일로 전향하여 장식적인 요소는 빼고 객관적인 스타일로 변하게 됩니다. 그는 일러스트레이션을 기반으로 출발했으나, 구성주의적 관점으로서 그래픽 디자인은 본능적 직감에 의존하기보다 합리적이고 객관적이며 수학적 비례를 사용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서체는 향한 후 현대 디자인이 추구하는 경제적인 부분과 유용함을 강조하는 작업에 집중했습니다. 주를 이루던 아방가르드 안에서 소수였던 스위스가 유럽의 모더니즘 시초가 되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되죠. 또한, 그의 포스터는 시대를 초월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음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줍니다.
스위스 디자인, 즉 국제주의 양식으로 정착된, 국제 타이포그래피 스타일(International Typographic Style)이라 부르는 이 운동은 그리드 시스템을 앞세워 세계 어디서나 통용될 수 있는 규칙과 질서를 부여했습니다. 이 양식의 주도적인 이론가이자 실천가인 뮐러-브로크만은 그리드 시스템을 이용해 객관적이고 기능적인 디자인을 추구하게 됩니다.
1950년부터 1972년까지 그는 취리히의 콘서트홀의 포스터를 디자인하게 됩니다. 이때 작업했던 포스터들은 뮐러-브로크만의 구성주의 진수를 보여주게 됩니다. 이로써 시각문화의 표준적인 교본이 되어 텍스트와 사진의 강한 연계성을 갖게 됩니다.
위대한 디자이너에게 디자이너 정신을 본받자...
그는 1958년부터 한스 노이 부르크(Hans Neuburg), 카를로 비바 렐리(Carlo Vivarelli), 리하르트. P. 로제(Richard Paul Lohse)와 함께 <노이에 그라피크(Neue Grafik, New graphic)>지를 발행하고 스위스 모더니즘 작가들의 작품을 국제 사회에 소개했습니다. 이로 인해 미국의 바우하우스까지도 특별 강연을 하러 가게 되고, 미국까지 전파되면서 스위스 디자인의 영향력을 디자인과 저술 그리고 교육을 통해 보다 국제적으로 펼치는 계기가 되면서 국가적인 운동이 국경을 넘어 범세계적 디자인 규범이 되는데 지대한 공헌을 하게 됩니다.
뮐러-브로크만과 그의 동료들은 산세리프체만을 사용했고, 1957년에 나온 헬베티카(Hevetica)는 스위스 스타일을 대표하는 공식 서체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관심의 핵심은 단지 스타일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디자이너의 정신과 태도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그는 그리드 시스템이 조직적이고 미래지향적인 디자이너의 정신 자세를 나타내기에 가장 적절한 도구라고 확신했습니다.
디자이너로서 배워야 할 점은 그의 스타일도 맞겠지만, 디자이너로서의 정신과 태도가 첫번째라고 생각하면서 위대한 그래픽 디자이너 요제프 뮐러-브록만의 글을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