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밀루더에 대하여
그래픽 디자이너이자 교육자인 에밀루더는 새로운 타이포 그래피의 기초를 마련한 가장 중요한 타이포그래퍼중 한명입니다. 1942년에 바젤 예술공예학교에서 타이포그래피 전공의 교직을 맡으며 교육자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합니다.
에밀 루더는 1914년 스위스에서 태어난 타이포 라이터이자 그래픽 디자이너로, 아르민 호프만(Armin Hofmann)이 바젤 예술 공예 학교(Schulefür Gestaltung Basel,Basel School of Design)를 설립하고 스위스 디자인이라고 알려진 디자인의 스타일을 확립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그는 무엇보다도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은 글을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산세리프 서체를 매우 중시했고 그의 작품은 명확하고 간결하며, 특히 타이포그래피입니다.
스위스 디자인 운동의 일부로 분류된 대부분의 디자이너들처럼, 그는 비대칭적인 구성을 선호했고, 문자의 카운터와 구성의 부정적인 공간을 중요시했습니다. 호프만, 프루티거(Frutiger), 뮐러 브록만(Müller Brockmann)의 친구이자 동료인 루더는 1940년대와 50년대에 그래픽 디자인을 개발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그의 스타일은 많은 디자이너들에 의해 모방되어 왔고, 디자인에 그리드를 사용하는 것은 많은 수준에서 웹 디자인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그는 철학, 이론, 그리고 체계적인 실용적인 방법론으로 구성된 설계와 교육에 대한 전체적인 접근 방식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 타이포그래피 분야에서 구별될 수 있습니다. 그는 그래픽 디자인에 대한 높은 포부를 나타냈으며, 그래픽 디자인의 기능 중 일부는 '말과 이미지의 선과 아름다움을 알리고 예술의 길을 여는 것'이라고 썼습니다(1952년 11월호). 그는 스위스 스타일 디자인에 기여한 주요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그는 타이포그래피의 목적은 산세리프 서체를 중요시 할 뿐만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 아이디어를 전달하는 것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얀 치홀드 이후 어떤 디자이너도 에밀 루더만큼 레터프레스 타이포그래피 분야에 전념하거나 그렇게 확신에 차서 글을 쓴 사람이 없습니다.
스위스 스타일을 개발하다
스위스 스타일(International Typographic Style)은 1950년대에 스위스에서 개발되었습니다. 이 스타일은 산세리프 서체를 사용하여 정의되었으며, 구조에 페이지 그리드를 사용하여 비대칭 레이아웃을 생성했습니다. 1960년대에는 송전망이 일상적인 절차가 되었습니다. 그리드는 스위스 그래픽 디자인의 스타일과 방법을 암시하게 되었습니다. Ruder는 다른 크기의 이미지의 기초로서 9개의 정사각형 그리드를 시연했습니다. 이미지의 위치와 모양은 24가지가 있습니다.
또한 시각적인 의사소통의 수단으로서 타이포그래피와 사진의 결합이 강조되었습니다. 가장 영향력 있는 주요 작품들은 포스터로 개발되었는데, 이것은 가장 효과적인 의사소통 수단이라고 여겨졌습니다.
에밀 루더는 1914년 3월 20일 스위스 취리히에서 태어났습니다. 루더는 바젤(1929-1933)에서 타이프 세터로 훈련받았고 1938-1939년 파리에서 공부했습니다. 에밀 루더는 타이포그래피라는 제목의 타이포그래피의 기본 문법을 출판했습니다. 이 텍스트는 1967년 스위스 출판사 아서 니글리에 의해 독일어, 영어, 프랑스어로 출판되었습니다. 이 책은 스위스 스타일을 전파하고 전파하는 데 도움이 되었고,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그래픽 디자인과 타이포그래피 프로그램의 기본 텍스트가 되었습니다. 1962년 그는 뉴욕에 국제 타이포그래픽 예술 센터(ICTA)를 설립하는 것을 도왔습니다.

교육자로서 에밀루더
루더는 15세의 나이에 작곡가의 견습생으로 디자인 교육을 시작했습니다. 20대 후반까지, 그는 바우하우스와 치콜드의 새로운 타이포그래피 원리들이 가르쳐진 쿤스트게베르베슐 취리히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
루더는 1942년 스위스 바젤의 알제마이네 게워베슐레에서 처음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는 무역학생들의 타이포그래피를 담당했습니다. 그는 1947년에 응용예술의 견습부장이 되었습니다.1947년 루더는 예술가이자 프린터인 아르민 호프만을 만났습니다. 루더와 호프만은 오랜 기간의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은 1950년대 중반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었습니다. 1960년대 중반까지 그들의 강좌는 긴 대기자 명단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Typografishche Monatsblätter (Typographic Monatsblätter)의 기고 작가이자 편집자였습니다. 그 당시 대중적인 무역 출판물이었죠. 1946년, 그의 디자인은 타이포그래피쉬 모나츠블레터 표지 디자인 경쟁에서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전쟁 후 몇 년 동안, 응용 예술의 거의 모든 분야에서, 시대에 더 잘 맞는 새로운 형태의 표현으로 전환될 조짐이 보이지 않았던, 에밀 루더는 전통적인 타이포그래피의 모든 전통적인 규칙을 버리고 현대 시대에 따라 새로운 구성 법칙을 확립한 최초의 선구자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림 같은 생각에 열심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쇄의 실제 목적, 즉 가독성이 상실되는 단순한 장난스러운 디자인에 빠져들고 싶지 않았습니다. 인쇄술의 주된 목적이 통신이라는 루더의 주장은 미적 효과를 배제하지 않았습니다. 대조는 그의 방법 중 하나였습니다. 그는 본질적으로 편지 인쇄술에 전념했습니다.
타이포그래퍼로서의 그에 대하여...
에밀루더는 Typografische Monatsblätter에서 모더니즘의 옹호자로 서서히 부상하기 시작했습니다. 1952년에 단 한번의 월간 간행물은 이니셜 TM에 의해 알려져로 모아져(에스지엠).에밀 루더의 새 잡지의 인물 중 한 사람, 인쇄상의 생각에 핵심 힘이 있었다고한다. 1952년 2월의 3개의 기사를통해 급진적인 팬들을 갖게되었습니다. 1952년 1월에는 이 잡지의 첫번째 호는 서체인 타임체(Times)로 통일하게 되었습니다. 2월호에서는 바우하우스를 소개하는 기사에 Minitype를 알렸습니다.
25년동안의 가르침의 끝에는 그의 아이디어 접근 방식등을 담은 책 "Typographie : A Manual for Design "를 출판하게됩니다. 타이포그래피를 다루긴 하지만, 디자인적 가르침을 넘어 디자이너로서의 비판적인 성찰을 회고하기도 합니다.
브로크만과 같이 디자인 그리드 시스템을 통한 작업물 통제를 넘어 디자이너로서의 비판하는 자세는 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것이 그를 현재까지 위대한 디자이너라 인정하게 만들 수 밖에 없지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며 현재 우리 디자이너들의 마음가짐에 대해 생각해보며 에밀루더의 소개를 마칩니다.